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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06월25일] 6월 25일에 생각하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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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YOSUNG 댓글 0건 조회 366회 작성일 23-06-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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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는 것은 내게 껄끄러운 일을 해소해 내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미움의 대상을 향해 맘껏 증오의 화살을 쏘는 것은 큰 노력 없이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껄끄러운 상대를 설득하고, 미움의 대상을 용서하며 받아 들이는 일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소비해야 가능한 일이고, 깊은 인격의 성숙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의 세상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 중에 하나가, <분노의 사회>입니다. 서로를 향해 맘껏 분노를 뿜어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막연한 예측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OECD 가입된 30개국 중 갈등지수가 멕시코-이스라엘에 이어 3위입니다. 두사람이 살아가면서도 갈등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만,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사회의 성숙도, 시민의식의 가늠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갈등의 가장 밑바닥 뿌리를 들여다보면 <분단의 갈등>이 많은 파생적인 갈등을 만들어 내는 중요 요소입니다. 분단의 갈등이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오늘, 한국전쟁인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 


분단 갈등의 시작점은 일제 강점기 이후 해방을 맞은 후의 친일파 척결 갈등으로부터 시작해서 사회주의의 태동, 신탁통치 찬-반 갈등으로 이어졌고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시작된 한국전쟁은 깊은 상처를 우리 민족의 가슴에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 상처가 계속해서 우리 민족에게 숱한 후유증을 주고 있다면 당연히 상처를 치유하여 건강한 민족을 만들어야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용서(容恕)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북한의 하는 짓도 얄밉기도 하고, 분단을 빌미 삼아 이득을 취하는 기득권 세력의 힘도 한 몫 하고 있습니다. 용서의 한자어 중 ‘용서할 서(恕)’는 ‘같을 여(如)’에 ‘마음 심(心)’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같은 마음을 품어야 용서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화내고 증오로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힘들지만 용서의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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