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04월06일 주보 칼럼] 중립, 그리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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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YOSUNG 댓글 0건 조회 44회 작성일 25-04-05 19:13본문
우리는 자주 “고통 앞에 중립 없다”, “정의 앞에 중립 없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현실적 고민이고, 삶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중립’이라는 단어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어느 편도 들지 않고 갈등 속에서 조용히 빠져나오는 것은 지혜로운 처세술로, 평화로운 선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립이 미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고통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의 침묵은 곧 살인에 대한 방관이고, 무관심은 폭력입니다. 침묵할수록,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거리를 둘수록 고통의 시간은 길어지고 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결국 그렇게 ‘중립’은 ‘자기 보호’로 사용될 뿐입니다.
누구나 다 용감할 수는 없습니다. 말하는 순간, 반대에 부딪히고 오해를 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괜히 나섰다가 상처받는 일을 피하고 싶어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상황입니다. 그런 두려움을 뚫고 나오는 것이 <용기>입니다.
모두가 침묵할 때, 한 사람의 분명한 입장이 전체 분위기를 바꾸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작고 조용한 목소리 하나가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는 희망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 부르심은 단지 안전하고 조용한 삶을 살라는 부르심이 아닐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를 행하며, 고통받는 자들의 친구가 되라는 부르심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 길은 언제나 편안하지는 않지만, 참된 생명과 의미가 있는 길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살아간다고 고백한다면, 우리 또한 불의 앞에, 고통 앞에 침묵하지 말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합니다. 세상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누군가의 고통이 더 커지기 전에 침묵 대신 말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586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의 찬송 가사는 이렇습니다.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 할 때 있나니 / 참과 거짓 싸울 때 어느 편에 설건가 /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고상하고 아름답다 진리 편에 서는 일 / 진리 위해 억압 받고 명예 이익 잃어도 / 비겁한 자 물러 서나 용감한 자 굳세게 / 낙심한 자 돌아 오는 그 날까지 서리라.”
훗날, 용기 없던 중립은 부끄러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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