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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6] 구호에 지친 등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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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34회 작성일 17-10-05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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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출장으로 운동할 새가 없이 지내다가 지난주에는 큰 맘 먹고 효성동 뒷산을 올랐습니다. 산은 가면 늘 좋습니다. 그동안 못가본 새에 등산로가 많이 정비되었습니다.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나무 기둥을 세우고 밧줄로 막아 놓기도 하고, 나무 계단도 새로 정비한 듯 싶습니다.

교대 후문으로 시작해서 중구봉으로 가는 등산로에는 유난히 계단이 많습니다. 문제는 새로 계단을 정비하면서 계양구청의 담당 부서가 의욕을 부렸나 봅니다. 서너 계단마다 깨알같이 계단 턱에 온갖 구호를 적어 놓았습니다.
“산 사랑, 물 사랑, 자연 사랑, 인간 사랑”
“산불 조심”, “서로 가꾼 푸른 강산, 함께 웃는 우리 사회!”, “산림 내 취사 행위 금지”... 이런 표어가 계속 반복해서 나옵니다. 정상에 거의 다 도착할 때 즈음엔 뜬금없이 “간단한 준비운동을 통해 근육을 풀어줍니다.”라는 친절한(?) 안내도 등장합니다. “목마르면 물을 마시세요.”라는 안내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
고요한 새벽녘... 아침 산을 오르면서 나무와 하늘을 보고 싶은 제 눈에 구호들이 꽂힙니다. 보고 싶지 않아도 계단을 오르면 반드시 눈길을 두어야 할 자리에 어찌나 적절하게 붙여 놓았는지... 이쯤 되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산을 다 오르니 표어만 모아 놓은 책 한권을 읽은 기분입니다.

거리에 나서면 길거리마다 서로 경쟁하듯 온 건물을 다 뒤덮은 간판들.. 서로 아우성치듯 펄럭이는 현수막의 광고 문안들... 한 때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표어천국이었습니다. 담벼락마다 “가래침을 뱉지 마시오.”, “소변금지”, “반공방첩”,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등등... 구호가 넘치는 사회는 건강치 않은 사회인 것을 스스로 반증합니다.
산은 쉼이 필요한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쉴 새 없이 윽박지르듯 외쳐대는 구호들은 산에서마저도 산을 찾은 이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습니다. 산길을 걸으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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